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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이상행동 및 정신장애의 판별기준 2

by 발랄루피 2022. 7. 22.

3. 문화적 규범의 일탈
모든 사회에는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따라야 하는 문화적 규범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부모자녀관계, 친구관계, 이성관계, 학교생활, 직장생활 등 다양한 사회적 활동장면에서 자신의 역할에 따라 취해야 할 행동규범이 존재한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 원만하게 적응하기 위해서 이러한 문화적 규범을 잘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적 규범에 어긋나거나 일탈된 행동을 나타낼 경우에 이상행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생은 교사에게 존댓말을 해야 하는 문화적 규범을 지닌 사회에서 학생이 교사에게 반말을 한다면 이는 이상행동으로 간주될 수 있다. 또한 처음 만난 이성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포옹을 하거나 문란한 언행을 한다면 이러한 행동 역시 우리 사회의 규범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이상행동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화적 기준 역시 몇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문화적 상대성의 문제이다. 문화적 규범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문화에 따라 다르다. 한 시대 또는 한 문화에서 정상적인 행동이 다른 시대와 다른 문화에서는 이상행동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따라서 문화적 기준은 필연적으로 시대와 문화에 따라 상대적으로 적용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둘째, 문화적 규범 자체가 바람직하지 못할 경우에도 이를 적용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문화적 규범 중에는 기득권자 또는 사회적 강자의 이익을 유지하거나 강화하기 위한 것들이 많다. 따라서 흔히 창조적이고 개혁적인 선구자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잘못된 규범을 비판하고 이에 저항하는 행동을 나타낸다. 과연 이러한 경우에도 문화적 규범이 개인 행동의 정상성과 이상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적용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문화적 규범의 준수는 사회적 적응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문화적 규범을 융통성 없이 따르는 것이 오히려 개인적 부적응을 초래하거나 개인적 고톹ㅇ을 야기할 수도 있다. 예컨대, 분노를 느끼는 상사에게 규범적인 존경행동을 나타내는 경우는 오히려 개인의 정서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잘못된 문화적 규범에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의존적 행동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문화적 규범은 이상행동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DSM-5에서는 다른 기준에 의해서 이상행동으로 평가되더라도 개인이 속한 문화나 집단에서 기대되고 용인되는 행동이라면 이상행동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특정한 문화나 종교집단에서 용인되는 비현실적 신념이나 기이한 종교체험은 이상행동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2. 통계적 규준의 일탈
인간의 어떤 특성을 측정하여 그 빈도분포를 그래프로 그리게 되면 종을 거꾸로 엎어 놓은것과 같은 모양의 정상분포를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즉, 평균값에 해당되는 사람의 수는 많은 반면, 평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 수는 감소하는 추세를 나타내게 된다. 이러한 통계적 속성에 따라서 평균으로부터 멀리 일탈된 특성을 나타낼 경우 ‘비정상적’이라고 보는 것이 통계적 기준이다. 예컨대, 한 사람의 키가 다른 많은 사람들의 평균치보다 너무 작거나 너무 클 경우에 비정상적인 것으로 평가되어 ‘난쟁이’ 또는 ‘거인’으로 간주된다. 이처럼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많은 사람의 평균적인 행동과 비교하여 매우 일탈되어 있을 때 이상행동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루에 두세 번 손을 씻는 것은 흔히 있는 정상적인 행동이지만 만일 어떤 사람이 수십 번 또는 수백 번 손을 씻는다면 이런 행동은 이상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통계적 기준에서는 평균과 표준편차라는 통계적 규준에 의해 정상성과 이상성을 평가한다. 즉, 평균으로부터 두배의 표준편차 이상 일탈된 경우에 이상행동으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통계적 기준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경우는 지적장애이다. 지적장애는 지능검사의 결과에 의해서 판정된다. 대부분의 지능검사는 평균이 100점이고 표준편차가 15점으로 되어있다. IQ가 100인 사람은 같은 나이또래의 평균에 해당하는 지능을 지닌 사람이다. 반면 평균 100으로부터 2표준편차, 즉 30점 이상 낮은 70점 미만의 IQ를 나타낼 경우에 지적장애로 판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적 기준은 이상행동을 판별하는 데에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첫째, 평균으로부터 일탈된 행동 중에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일탈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IQ가 130 이상인 사람은 통계적 기준으로 보면 비정상적이지만 이들의 특성을 이상행동으로 볼 수는 없다. 둘째, 통계적인 기준을 적용하려면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측정하여 그 평균과 표준편차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행동을 측정하여 이러한 통계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흔히 평균으로부터 2 표준편차만큼 일탈된 경우를 이상행동과 정상행동의 경계선으로 삼고 있지만 이러한 통계적 기준은 전문가들이 세운 편의적 경계일 뿐 이론적이거나 경험적인 타당한 근거에 기초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통계적 기준은 심리검사를 통하여 평균과 표준편차를 측정할 수 있는 일부 심리적 특성의 경우에 한하여 이상행동의 판별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DSM-5에서는 정신지체와 학습장애를 비롯한 일부 정신장애의 경우에 이러한 통계적 기준을 적용하여 진단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상행동과 정신장애를 규정하는 절대적인 단일한 기준은 없다. 모든 기준마다 장단점을 지니고 있어서 실제적으로는 여러 가지 기준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이상행동을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정의 방식은 ‘가족유사성의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 이 원리는 한 가족의 구성원이 각기 얼굴 생김새가 다르지만 얼굴 특성의 일부를 서로 공유하기 때문에 한 가족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아들의 눈과 코는 아버지를 닮고 입과 귀는 어머니를 닮은 반면, 딸의 눈과 입은 아버지를 닮고 코와 귀는 어머니를 닮을 수 있다. 따라서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은 서로 얼굴 생김새가 다르지만 얼굴의 일부 특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 가족임을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앞에서 소개한 이상행동의 모든 기준에 해당하지 않지만 그 몇 가지 기준을 공통적으로 충족시킬 경우에 이상행동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현대이상심리학. 권석만